현대 기술의 중요한 성취 중의 하나인 운영체제(이하 OS)를 놓고 보자. 운영체제란 MS의 윈도우즈나 애플의 맥OS, 오픈소스인 리눅스처럼 시스템과 사람을 중계해주는 소프트웨어를 말한다. 최초의 운영체제는 명령을 직접 입력해야 했다. 그래서 명령어를 모르는 일반인들에게 컴퓨터는 언감생심이었다. 그러다 GUI라는 개념을 탑재한 OS가 20년 전에 나왔다. GUI는 Graphic User Interface의 약자인데, 쉽게 말해서 MS의 윈도우즈가 출시되었다.(고 해두자) 사람들은 명령어를 모르지만 마우스로 아이콘을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얼마 전에는 아이폰과 아이패드가 나왔다. 이 기기들은 iphoneOS라는 OS를 사용하는데 iPhoneOS는 컴퓨터의 계보를 계승했으면서도 게임기처럼 파일이 없다. 사실 파일은 있지만, 사용자가 파일을 열람할 수 있는 방법을 원천적으로 차단했다. 파일관리를 앱들에게 전권 위임함으로써 사용자들이 파일을 관리해야 하는 부담에서 해방시켰다.
그런데 이런 변화를 진보라고 부를 수 있을까? 물론, 우리 부모님 입장에서는 틀림없는 진보고, 사용성의 혁명이다. 하지만 나 같은 개발자나 컴퓨터 활용능력이 뛰어난 사람에게는 답답하기 짝이 없는 시스템이다. 그래서 GUI가 세상을 지배한지 한참이 지난 지금도 컴컴한 화면에서 토닥토닥 명령어를 입력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고, iPhoneOS에서 파일을 탐색할 수 있고, 명령어도 입력할 수 있는 해킹인 소위 '탈옥'이 줄을 잊는 것이렸다.
시대정신이란 세월을 진보의 관점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각각의 시대는 그 시대가 안고 있는 '맥락'을 가지고 있다. (고작 천년사이에 사람이 더 똑똑해질 리는 없기 때문에) 천년 전이나, 천년 후나 세상은 똑같은 크기의 영리함과 아둔함으로 이 '맥락' 위에서 궁리할 것이고, 그 결과는 그 시대의 '정수'면서 또 '한계'가 된다. 여기서 세월은 두가지 의미를 갖게 되는데, 하나는 선대의 '한계'를 극복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앞선 시대의 '정수'를 단념하는 것이다. '한계'의 극복에만 열광하고, '정수'의 단념을 애도하지 않으면 많은 것을 놓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