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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요즘 코미디같은 '선덕여왕'
작성자
호박씨
작성일
2009-10-19
조회
5438

요즘 선덕여왕을 보다보면 재미나 스릴이 느껴지기 보다는 헛웃음부터 먼저 나온다.


덕만공주가 재주를 부려 미실을 정치적으로 한방 먹이면 미실은 뒤에 가서 "역시 덕만은 지금까지 상대한 자들과는 차원이 다른 대단한 적수야!" 하고 홀로 감탄한 뒤 다시 복수를 하고 이번에는 덕만공주가 호되게 당한 뒤 홀로 방안에 앉아 "미실은 정말 무서운 상대야!" 하고 독백하며 몸 한번 부르르 떤 후 다시 미실을 보내버릴 궁리를 한다.


이렇게 서로 낯뜨겁게 칭찬해대며 한방씩 주고받는 패턴으로 드라마를 쭉쭉 늘여오더니 이제는 김춘추까지 가세해서 똑같은 짓(?)을 김춘추<->덕만공주, 김춘추<->미실, 덕만공주<->미실 간에 해대고 있다.


아마도 '미실'과 '덕만공주'라는 캐릭터의 '영웅적 면모'를 과시하기 위해 작가들이 집어넣은 장치같은데 그것도 한두번 할 때나 시청자들이 감탄을 하지 이런 식으로 지리하게 반복한다면 그냥 한편의 코미디가 되어버릴 뿐이다.


또한 '선덕여왕'에서는 보는 사람 감질나게 만드는 연출도 요즘 부쩍 늘었다. 예를 들면 해당 에피소드의 내용을 짐작할 만한 중요한 대사가 막 나오려는 순간에 화면을 딱 끊고 "그러니까 그것이 뭐냐하면! 에~~ 좀있다 알려줄께" 하는 식으로 여러사람이 똑같은 말을 반복하며 한시간 내내 바람을 잡다가 끝나기 1분전에 털어놓으면서 모두의 놀란얼굴 정지화면으로 보여주고 그 회가 끝나는 식이다.


그 사이에는 선덕여왕의 킬링타임부대인 각종 귀족과 화랑과 그의 낭도들이 쉴새 없이 우루루 몰려나와 아무 의미도 없는 너스레를 떨어대며 시간을 죽인다. 이렇게 허무개그식으로 드라마를 연장하다 보니 그 와중에 애초 특유의 카리스마와 독특한 언행으로 시청자들의 큰 관심을 모았던 유신이나 비담같은 강력한 캐릭터들은 다 평이한 화랑1, 화랑2 역할로 쪼그라들고 말았다.


김유신 말이 나와서 말인데, 극중 미실 앞에서 무릎꿇고 거두어 달라며 맹세하고 그쪽 가문의 처자와 혼인까지 해놓고 정작 그 후로는 미실 앞에 그림자도 안보인 채 여전히 덕만공주 옆에서 참모역할을 혼자 다하고 있다. 미실도 "얘는 내 부하한다면서 어디가서 코빼기도 안비처?" 할법도 한데 김유신이 덕만을 돕든 말든 관심도 없고,,, 이럴거면 김유신이 미실세력에 전향하는 과정을 거의 한회 분량을 다써가며 왜 그리 애절하고 심각하게 묘사한 건지 작가의 의도를 모르겠다.

하기야 제작진의 입장이 이해가 안가는 것은 아니다. 덕만공주가 신라왕실에서 완전히 자리를 잡은 상황에서 이제 미실세력을 제압하고 왕위에 등극하는 부분만 다루어주면 더는 할 이야기가 없는데 윗선에서는 12월달까지 드라마가 계속되야 한다고 고집하니, 연출진으로서는 이런 꼼수를 부릴 방도밖에 없는 것이다.


시청률이 40% 에 육박해도 어머어마하게 쏟아부은 제작비를 건지려면 아직도 멀었나보다. '대장금'도 그렇고 '주몽'도 그렇고 MBC는 늘 그런식으로 한푼이라도 더 챙기려고 발발 떨다가 걸작드라마를 범작(凡作)으로 추락시켜 버리곤 했다. 직원들 월급깍아서 메꾸는 한이 있더라도 드라마 자체의 작품성을 살리는 쪽으로 간다면 장기적으로 MBC를 명품드라마 브랜드로 각인시키는 훨씬 큰 이득을 볼 수도 있을텐데 말이다.

[[조선일보 블로그뉴스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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