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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릎팍 도사>에 출연한 장한나
작성자
작성일
2009-09-10
조회
9475





<무릎팍 도사>에 출연한 장한나는 정말 털털했다. ‘밤 10시에 녹화를 해서 힘들지 않느냐?’는 강호동의 물음에 장한나는 늘 밤에 연주를 해서 좋은 컨디션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조금 이따 밥주셔야 된다”고 재치있게 말해 무릎팍 일행을 폭소에 빠뜨렸다.


세계적인 거장 밑에서 배운 장한나를 보며 강호동은 조금 속된 질문을 던졌다. “지휘자 로스트로포비치, 세계적 첼리스트 미샤 마에스키등의 거장에게 수업을 받았는데, 수업료는 얼마나 냈느냐?”고 말이다. 답변은 놀라왔다. “한번도 레슨비를 드린 적이 없다”고 돌아왔다. 하긴 장한나가 고백한 대로 그들은 너무 거장이라 시간 자체를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이들이다. 그들은 천재 장한나의 재능을 알아보고 자신이 아는 것을 전수한 것이고, 언젠가 장한나가 자신들처럼 후세에게 가르쳐주기를 바랬을 뿐이었다.


1982년 12월 23일생인 그녀는 5살 때 피아노를 배우고, 7살 때 첼로를 배운 신동이다. 7세에 국내 콩쿨을 휩쓸고, 8세엔 서울 시향과 협연하고 10세때는 뉴욕 줄리아드 예비음대에 특별 장학생으로 입학했다. 로스트로포비치 심사위위연 10명 만장일치의 최우수상을 수상했고, 13살엔 런던 심포니오케스트라와 앨범을 녹음했고, 이후 뉴욕 필하모닉 등과 협연을 했다.


2001년도엔 하버드대 철학과에 입학했으며, 이후 칸 클래식 음반상 협주곡 부문을 수상했다.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만큼 그녀의 음악 경력은 화려했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녀의 부모는 그녀에게 첼로를 배우길 강권한 적이 없었다.


평생 음악을 친구로 동반자로 권했던 것이었다. 어린 장한나를 위해 아버지는 의자 다리를 짧게 잘라줘서 그녀가 연주할수 있게끔 해줬다. 처음 6개월 동안 첼로 연주를 배우면서 만난 첫 선생님은 그녀에게 엄격했다. 그래서 어린 그녀는 큰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그러나 상냥한 대학생 선생님을 만나면서 그녀는 변했다. 한번 해보라고 권유하고 잘한다고 칭찬해주며 거의 놀듯이 대해준 그녀 덕분에 장한나는 첼로에 재미를 느끼게 되었다.


첫 콩쿨에 출전해서 1등한 것에 대해 장한나는 자신이 특별하다고 생각지 않았다. 그저 “좀 잘하는구나”하고 여겼다. 10살 때 줄리아드 예비음대 특별장학생에 입학하게 된 계기는 그녀의 아버지가 장한나의 연주를 비디오로 녹화해 뉴욕에 있는 줄리아드 음대에 보냈는데, 심사위원들이 모두 보고 반해 전액 장학금을 주겠다고 연락이 오게 된 것이었다. 그 소식을 전해들은 장한나의 부모님은 고국에서의 모든 삶을 정리하고 딸을 위해 기꺼이 미국행을 택했다.


<무릎팍도사>에 출연한 장한나는 당시에는 너무 어려서 부모님의 고마움을 몰랐다고 했다. 비록 미국으로 갔지만, 항상 자신의 옆에는 부모님이 계셔서 별로 환경이 바뀌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고 한다. 한국에서의 직장생활과 사회 생활 그리고 친구와 친지를 모두 정리하고 미국행을 택한 것에 대해 부모님께 너무 감사하다고 했다.


‘장기간 해외공연 여행을 하면서 한국음식이 생각나느냐?’는 강호동의 질문에 장한나는 그렇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삼겹살, 갈비, 밥, 콩’하는 식으로 먹고 싶어하는 음식을 열거했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더 배가 고프고 그러면서 지쳐 잠든다고 했다. 왠지 처량한 모습이 연상되었지만, 그녀는 씩씩하게 “이젠 다 잘먹는다”고 답변했다. 그러면서도 “한국사람은 밥심이 아니냐”며 유머러스한 면을 드러냈다.


다음은 첼로 연주를 할때 입는 드레스 이야기가 나왔다. 드레스는 예쁘라고 입느게 아니라 ‘장비’라고 했다. 그러나 첼로연주를 하면 너무 힘들어서 엄청나게 땀을 흘리고, 덕분에 연주회가 끝날 때마다 땀으로 드레스를 적신다고 했다. 드라이를 할때마다 색이 바래 드레스를 나중엔 입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고.


“친구들이 개구리 손이라고 놀렸다”고 답할 정도로 장한나의 손은 오랜 연주로 인해 왼손 끝에 굳은 살이 박혀 두터웠다. 반면 오른손은 활을 잡아 약간 휘었다. 게다가 왼쪽 어깨에 첼로를 기대서 하다보니 몸의 균형이 무너져 양 다리의 길이가 달라 끝단을 짝짝이로 잘라 맞춘다고 했다. 얼마나 고된 연습을 했으면 그 지경에 이르렀을까? 가슴에 굳은 살이 박힌다는 말에 "천재“라는 말은 수없이 반복된 연습뒤에 있음을 새삼 절감하게 되었다.


그런 와중에서도 장한나는 자신의 길게 늘어난 왼손을 보면서, “어릴 적에 스트레칭 했으면 키가 좀 컷을텐데”라고 아쉬운 표정을 지어 웃음을 자아내게 했다.


무대에서면 짓는 특유의 표정에 대해 장한나는 일부러 짓는 것이 아니라, 연주에 몰입하다보니 그렇게 된다고 답했다. 자신도 여자인데 일부러 그런 표정을 지을 리가 있겠냐면서. 그러면서 연주회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을 잊어버리는 것”이란 그녀의 말은 일반인을 알 수 없는 장인의 면모를 느끼게 했다.


“나라는 존재를 잊어야 좋은 연주가 가능해요”라며 손이나 다른 것을 생각하는 순간 음악과 하나되는 끊을 놓쳐버린 다는 그녀의 고백은 음악에 모든 것을 몰입하는 그녀의 집념과 노력을 그대로 노출하는 이야기였다.


장한나가 하버드대에 입학하게 된 계기도 독특했다. 그녀가 세계적 첼리스트라서 온게 아니라 SAT의 예비시험에서 높은 점수를 받아 하버드측에서 연락이 온 것이었다. 그리고 이전부터 철학에 관심이 많아서 책을 좀 봤는데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어 선택하게 된 것이었다.


우리나라 예체능계열 학생들이 오로지 자신의 주특기인 운동과 연주 등에 빠져 공부에 등한시하며 오로지 외길만 걷는 것에 대한 비판인 것 같았다. “음악, 음악,음악”에만 빠진다면 ‘음악을 알 수 없을 것 같다’라는 그녀의 말에서 음악외의 인문학을 비롯한 다른 학문을 공부해 더욱 음악에 대한 이해를 풍성케 하는 배경을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국내 예체능 관련 교육도 그들의 특기만을 집중시킬게 아니라 학교수업등을 병행시켜 훗날 예체능 계열에서 빛을 보지 못할 때 다른 길을 찾을 수 있게 하고, 혹은 그 길로 정진해도 더 넓은 시각에서 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하지 않을까 문득 생각이 들었다.


세계적인 첼리스트를 뒤로 하고 지휘자에 도전하게 된 계기에 대해 그녀는 아버지의 조언을 꼽았다. 아버지는 “성인이 되었으니 사회에 환원해야 된다”고 그녀에게 이야기했고, 사회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아 오늘날의 자신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 장한나는 자신의 음악적 재능을 나눌 수 있는 방법을 찾다가 지휘자의 길을 선택했다고 답했다. 음악에서 느끼는 감동을 아이들에게 나눠주기 위해서였고, 첼리스트로서 줄 수 있는 건 한정적이지만 지휘자는 좀 더 많은 음악을 나눌 수 있다는 그녀의 말에서 속 깊은 진정성이 느껴졌다.


중간에 장한나는 자신의 악보를 들고나와 강호동과 유세윤 그리고 올밴 등과 함께 약간의 음악 수업을 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음악에 대해 문외한인 이들이 장한나와 함께 하면서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며 ‘거장의 진면목은 근엄하고 무게잡는게 아니라 쉽고 재밌게 음악을 전파하는 게 아닐까?’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지휘공부 때문에 하루 24시간이 부족하고, 지휘공부도 중요하지만 첼로도 놓지 않겠다는 욕심쟁이. “아낌없이 나누는 음악가 되겠다”는 그녀의 한마디 한마디가 커다란 감동의 울림이 되어 전해졌다. 부디 그녀의 바램처럼 훌륭한 지휘자와 첼리스트로 세계의 사람들에게 감동과 음악적 재능을 함께 나누는 거장이 훗날 되어주길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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