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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건강한 청년, 윤시윤
작성자
유후
작성일
2012-02-29
조회
68865

건강한 청년, 윤시윤

건강하다는 말은 정체를 알 수 없는 모호한 표현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윤시윤을 만나고 나니 건강한 신체에 깃든 건강한 정신의 실체가 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그는 건강한 배우이고, 건강한 청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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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 자나 안경을 쓰고, 인파 속에 있으면 아무도 못 알아 봐요. 그리고 생각보다 사람들은 그다지 남에게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웃음).” 윤시윤과 나는 2011년의 마지막 날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 날, 윤시윤은 시상식을 마친 후 친구들과 함께 차를 달려 부산으로 가서 새해의 첫 일출을 보고, 포장마차에서 줄 서서 떡볶이와 오뎅을 사 먹었단다. “해운대에서 송정 해수욕장을 넘어 기장 쪽으로 가면 사람도 없고 조용해요. 그래서 부산에 가면 항상 기장 쪽에 있어요. 매년 어느 정도 감상적인 기분으로 그 해의 캐치프레이즈를 정하는데, 올해는 이상하게 그냥 이 순간이 소중하다라는 생각만 들더라고요. 소중한 것들을 잘 지켜야겠다, 그런 다짐 정도만 했어요.” 해가 바뀌었고, 윤시윤은 27세가 됐다. 의심할 여지 없는 청년의 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지금까지 윤시윤에게서 청년의 이미지를 떠올려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항상 실제의 나이보다 한참 어려 보였고, 의지할 수 있는 남자라기보다는 지켜줘야 할 해맑은 남동생 같았다. <지붕 뚫고 하이킥>의 준혁 학생도, <제빵왕 김탁구>의 탁구도, 사랑이라고는 풋내 나는 첫사랑 밖에 해보지 않았을 것 같은 인물들이다. 하지만 그도 이번 작품에서는 사랑이라는 걸 했다. “작품에서 벗어나기는커녕, 아직 마지막회도 못 봤어요. (왜요?) 못 봐요. 마음이 아파서. <지붕 뚫고 하이킥> 때도, <제빵왕 김탁구> 때도 몇 개월이 지나서야 마지막 회를 볼 수 있었어요. 그 우울함이 엄청나거든요. 아주 아주 사랑하는 사람한테 이별 선고를 받는 듯한 느낌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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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 리는 모두 윤시윤을 안다. 심지어 여든 넘은 우리 할머니조차 그가 브라운관에 나오면 탁구가 나왔다며 좋아하신다. <지붕 뚫고 하이킥>은 그를 스타덤으로 끌어 올렸고, <제빵왕 김탁구>로 준혁 학생을 응원하던 누나 팬들 이외에 아주머니, 할머니 팬덤층까지(!) 다지는 데 성공했다. 작품으로 따지면 두 작품, 기간으로 따지면 고작 2년 조금 넘는 시간 동안 거둔 성과다. 그러나 화려한 전작들에 비해 <나도, 꽃>은 큰 화제를 불러 일으키지 못한 게 사실이다. 그래서 윤시윤에게는 다소 실망스러운 경험이 아니었을까 생각했지만, 그건 그야말로 기우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그와 만난 후 3분 만에 깨닫게 됐다. 윤시윤은 자랑스러운 애인을 소개하듯이 조심스럽고 수줍게 <나도, 꽃>에 대해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제가 추구하는 사랑관을 가진 캐릭터여서 좋았어요. <나도, 꽃>의 서재희는, 이를테면, 낯선 곳에서 안심하고 잠을 잘 수 없는 어떤 불안함을 가진 친구였어요. 이 친구가 봉선(이지아)을 만난 후에 계속 공수표를 남발하잖아요. 나만 믿어라, 나의 10주년 계획을 알려주겠다, 내 말을 듣고 있으면 종이꽃에서도 향기가 날 것 같지? 그 말들의 뜻은, 내가 영원히 사랑 받을 수 있게 되었다는 기쁨이 아니라 이제 내가 노력해서 사랑할 존재를 발견했다, 이 관계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의지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재희라는 사람이 좋았어요. 그게 제가 생각하는 사랑이거든요. 그리고 재희가 마지막 씬에서 웃었잖아요.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손을 잡고 가면서 무엇을 해줄까 궁리하는 거에요…” 내 쪽에서 스톱시키지 않으면 끊임 없이 이어질 것 같은 애정 담긴 수다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오빠만 믿어’ 식의 귀여운 허풍, 관계를 지켜낼 줄 아는 책임감, 쉽게 포기 하지 않는 지구력 등을 가진 서재희는 요즘 세상에서 찾기 드문 고전적인 남성상이요, 귀하게 여겨야 마땅할 남자였다. 그리고 이런 말을 하는 윤시윤 역시 그런 남자일 것 같다. “지켜주고 싶은 여자, 작은 것에도 감사할 줄 아는 여자가 좋아요. 내가 남자가 되는 기분이 드니까요. 아주 먼 옛날로 거슬러 올라가면 남자라는 말의 어원은 지켜주는 사람에서 나왔을 거라고 생각해요. 나도 그러고 싶어요. 근데 주로 짝사랑만 너덜 너덜해질 정도로 해 봤어요. 지켜주겠다니까 본인들이 싫다고 하더라고요. 경찰도 있는데 왜 네가 지켜주냐며(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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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시윤은 <나도, 꽃>을 찍기 전에 통영에서 영화를 한 편 찍었다. 아직 개봉 일자가 정해지지 않은 그 영화의 제목은 <백프로>, 이 영화에서 섬마을의 초등학교 선생님으로 등장한단다. 통영에서 오 개월 동안 아이들과 함께 지내며 있었던 에피소드들을 유쾌하게 늘어 놓는 그에게(“출연하는 아이들 중에 뚱뚱한 친구가 한 명 있었는데, 5kg 빼면 어머니께서 휴대폰 사 준다고 약속 하셔서 같이 하드 트레이닝 했어요. 결국 5kg 빼고 받은 휴대폰으로 요즘도 가끔 문자 와요. 살이 확 빠져서 씬과 씬이 안 붙는다고 감독님한테는 혼났는데...”) 개봉일이 차일 피일 미루어지고 있는데 불안하진 않나, 김탁구에 이어 또 다시 바르고 모범적인 캐릭터는 위험하지 않겠냐는 등의 잔소리를 늘어 놓고 싶었지만, 윤시윤은 이미지 변신이나 외적인 변화 대신 내면의 성장에 대한 욕심을 꺼내 놓기 시작했다. “작품들을 통해 조금씩 남자의 색깔을 찾아가고 싶어요. 그게 마초적인 이미지를 말하는 건 아니에요. 듬직하고 그릇이 큰 남자. 30대에는 정말 그런 남자의 그릇을 가진 사람이 되고 싶거든요.” “이번 작품을 하면서 내적으로는 중심을 지킬 수 있는 남자가 되고 싶었고, 외적으로는 분위기 메이커가 되고 싶었어요. 촬영장에서 선생님들은 안정감 있게 무게 중심을 잡아주는 역할을 하시잖아요. 저 같이 젊은 배우들의 역할은 열정과 힘이라고 생각해요. 좀 더 힘있게, 즐겁게, 재밌게. 지치지 않고…그건, 해야 하는 역할인 거 같아요. 난 배우다, 하면서 착각하는 것이 생기면 안될 거 같아요.” “작품을 하면서 바라는 건 그냥 그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 그거 밖에 없어요. 정말로요. 사실 이런 말을 입 밖으로 내는 게 좀 웃긴 일이고, 그냥 앞으로 연기자로서 살아가며 하나의 결을 보여 드리는 게 맞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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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지 않은 필모그래피이긴 하지만, 그 동안 윤시윤은 강박적일 정도로 반듯하고 도덕적인 캐릭터를 선택해 왔다. 대체적으로 사람을 잘 믿고, 선택할 수 있는 두 갈래의 길이 있을 때는 쉬운 길 보다는 옳은 길을 선택하는 인물들 말이다. 이러한 선택은 그의 고집이었을까? “앞으로 하게 될 모든 작품들이 내 가족한테 보여줬을 때 부끄럽지 않은 작품이길 바래요. 그게 악역이든, 어두움에 관한 것이든, 무엇이든 간에 그 안에 인간의 아름다움이 있는 작품이요. 단순히 휴먼 드라마만을 의미하는 건 아니에요. 인간에 대한 사랑이 없는, 인간의 도구가 되어버린 작품에 출연한다면 부끄러울 거에요. 오로지 잔인하기 위해서 사람을 사용한다든지, 이슈가 되기 위해서 사람을 사용한다든지, 그런 것 싫어요. 사람 자체가 예쁘잖아요. 그리고 제 연기로 인해서 누군가가 나쁜 마음 먹는 것, 참 싫어요. <제빵왕 김탁구>를 할 때도 이 드라마를 본 사람들이 엄마 생각이 나서 엄마한테 전화 한통 하는 게 바램이었고, <나도, 꽃>은 서른 살이든, 마흔 살이든, 사랑에 실패해 본 사람들이 어린 아이처럼 꿈꾸길 바랬어요. 나이 먹으니까 다 그게 그거더라, 가 아니라 다시 설레였으면 했어요. 그래서 이지아씨랑 더 유치하고 예뻐 보이게 찍자, 그래야 이 사랑이 아름다워지고 당위성이 생긴다, 그런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그러나 정작 인간을 성장시키는 건 동화 속의 아름다운 이야기 보다는 비극에 가까운 경험들인지도 모른다. “저도 고통이 사람을 가장 성장시킨다는 데 동의해요. 어릴 적에는 시간이 흐르는 것 만으로 성장했던 것 같은데, 성인이 되니까 어떤 경험들로 인해서 단계적으로 성장 하는 것 같아요. 그 중 일등은 당연히 사랑이죠. 누군가를 사랑하면 나를 돌아 보게 되고, 너무 싫은 나의 모습을 알게 되고…근데요, 저는 비극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동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즐거운 추억이나 동화 같은 마음이 없으면 고통 속에서 사람이 이기적으로 변하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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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미 눈치채셨겠지만, 윤시윤은 여전히 동화 속에 산다. 그것이 성장이 중지 된 나이브한 세계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겪을 만큼 겪고 깨질 만큼 깨져 보고도 여전히 계속되는 어른의 동화다. 혼자서 다른 행성에서 살다 온 것처럼 순도 높은 청년으로 성장한 그의 어린 시절이 궁금해졌다. “어린 시절에 순천에서 자랐어요. 지금도 할머니 집에 가면, 아침 7시 반쯤 일어나서 마을 뒷산을 왕복 해요. 벚꽃 나무가 만개해서 길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아주 예쁜 산인데, 거기 갔다 오는 동안 할머니가 개인 어선이 그날 새벽에 잡아오는 물고기들을 싸게 사 와서 아침을 만들어 주세요. 너무 맛있죠, 최고죠. 저희 할머니가 요리를 되게 잘 하시거든요. 어렸을 때 영어 학원 대신 서당에 다녔어요. 조금 특이한 케이스죠. 할머니께서 예의 범절에 무척 엄하셨어요. 그런데 그런 것들이 자연스레 몸에 밴 어른이 된다는 게 얼마나 좋은 건지 이제야 알게 됐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사람의 마음을 얻을 수 있는, 엄청나게 지혜로운 방법들을 알려 주신 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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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시윤이 인간을 대하고 만나고, 배워 가는 방식은 구식이다. 구식까지는 아니더라도, 요즘 유행하는 방식이 아닌 것만은 확실하다. 그러나 인간은 존재 자체가 예쁘다고 믿으며 인간을 연기하는 배우가 한 명쯤 있는 것도 나쁘지는 않은 것 같다. 그리고 만약, 인간의 실망스러운 점을 발견한다 해도 윤시윤은 쉽게 물러서지 않고 자신의 건강한 에너지를 나누어 가지려고 노력할 타입이다. 그러한 구식의 책임감이 윤시윤을 지치지 않고 달리게 해줄 동력일 것 같았다. “노홍철씨가 군대갈 때 하셨던 말이 있어요. 나, 캠핑 간다. 이런 정신적인 지배력을 배우고 싶어요. 자기만의 색깔과 엄청난 에너지로 주위의 좋지 않은 에너지들을 덮어버릴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청년이라면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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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www.marieclaire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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