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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디올의 아름다운 유산
작성자
유산
작성일
2012-03-02
조회
5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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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이라 불리는 옷, 뉴룩으로 쿠튀르 의상의 르네상스를 불러온 무슈 디올.그가 남긴 아름다운 유산은 6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디올 하우스의 영감의 원천이 되고 있다



무슈 디올의 뉴룩. 아마 패션을 전공한 사람이 아니어도 한번쯤은 들어본 말일 것이다. 비현실적으로 잘록한 허리선과 꽃처럼 퍼지는 스커트 라인으로 여성스러움을 강조하는, 디올의 시원이 된 디자인이라는 것 또한 잘 알려진 사실이다. 워낙 유명해 오히려 관심을 끌지 못했던 이 두 가지 주제를 다시 생각하게 된 것은, 이번 시즌 디올 코스메틱에서 새롭게 선보인 마스카라 이름이 ‘뉴룩’이기 때문이다. 세상에 선보인 지 65년이 지났음에도 끊임없이 디올 하우스 신제품의 영감의 원천이 되는 것을 보면, 뉴룩은 단순한 옷 디자인이아닌 디올의 시작점, 더 나아가서는 DNA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싱가포르에서 만난 디올의 헤리티지 매니저 빈센트 르렛(Vincent Leret)는 디올과 뉴룩 그리고 무슈 디올에 대한 궁금증을 속 시원히 풀어줄 만한, 걸어 다니는 디올 사전 같은 사람이었다. 아름다움을 사랑했고, 지금까지 패션 피플의 입에 오르내리는 쿠튀르 패션쇼의 기원이라 할 무슈 디올 그리고 뉴룩. 한 시간이 넘도록 이 두 가지에 대한 얘기를 나눴건만 미처 다 하지 못한 질문들, 들려주고 싶은 그의 이야기는 아직 너무나 많이 남았다.

디올은 42세 되던 1947년에 디올 하우스 살롱을 만들었다. 그토록 열정적으로 여성의 아름다움과 우아함을 추구하던 그가 늦은 나이에 자신의 살롱을 오픈했다는 것이 특이하다.
무슈 디올은 원래 건축가의 꿈을 가지고 있었으며 건축 외에 음악이나 미술 등 다양한 예술 분야에도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1930년대에 이미 달리, 피카소 등 유명 작가의 작품을 전시하는 갤러리를 운영하고 있었다. 사실 이 갤러리를 무슈 디올이 운영했다는 것은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다. 그에게는 ‘거리 한복판에 자신의 이름을 내건다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라는, 전형적인 귀족적 사고를 가진 어머니가 있었으니까. 그래서 그의 아름다운 디자인이 세상에 선보이기까지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예술 각 분야에 조예가 깊었던 데다, 오픈하기까지 오랜 기다림의 시간이 있었던 만큼 디올 하우스 살롱은 굉장히 고급스럽고 우아하게 꾸며졌을 것 같다.
무슈디올은 자연을 사랑했다. 그래서 오픈 당시 살롱 안은 온갖 꽃으로 만든 부케로 가득했다고 한다. 장미와 백합을 비롯해 그가 행운의 꽃이라 여겼던 은방울꽃까지. 거기에 세련된 미스 디올 향까지 더해, 살롱 오픈 행사에 참석한 이들을 놀라게 했다. 특히 이날 부케에 사용된 세 가지 꽃은 무슈 디올이 너무 좋아한 나머지후에 향수나 드레스 장식으로까지 사용하기도 했다.

무슈 디올의 디자인에는 어머니가 많은 영향을 끼쳤다고 들었다. 그 영향이어떤 식으로 표현되었나?
그의 어머니는 1920년대의 세련된 엘레강스 스타일을잘 보여주는 우아한 여성이었다. 그런 어머니와 많은 시간을 보내고 그 영향을 많이 받아서인지, 그의 룩에는 부채나 장갑 같은 20년대 여성 특유의 액세서리가 자주 등장했고, 엘레강스한 느낌을 강조하는 의상이 많았다.

뉴룩의 탄생, 그 순간이 궁금하다.
1947년 2월 12일, 전쟁의 후유증으로 파리는 어둡고 을씨년스러운 분위기였다. 이때 몽테뉴 30번가에 새로 등장한 쿠튀리에인 무슈 디올이 자신의 S/S 컬렉션을 발표한 것이다. 프랑스 기자들과 사교계 여성들, 할리우드 스타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패션쇼는 90명의 모델이 서는 엄청난 규모로 치러졌다. 패션쇼의 메인이던 코롤 라인 의상은 여덟 번째로 등장했는데, 그가 8을 행운의 숫자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의상은 패션쇼의 클라이맥스를 장식하게 된다. 당시 파리에서 가장 잘록한 허리를 가졌다는 모델 타냐가 입은 코롤 라인 투피스 정장은 천연 실크로 만들었으며, 잘록한 허리 라인을 지닌 풍성한 스커트와 우아한 재킷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구조적인 디자인과 정교한 주름 장식 덕에 마치 건축물 같았고, 이를 보던 당시 <바자>의 편집국장 카르멜 스노가 “완전한 혁명이에요. 이건 뉴룩입니다”라고 감탄하면서 뉴룩이란 이름을 갖게 됐다. 디올에 있어서, 그리고 패션계의 역사에 있어서 참으로 역사적인 순간이 아닐 수 없다.

뉴룩은 원래 코롤(Corolle) 컬렉션이라는 이름으로 발표됐다고 들었다.
꽃의 모양을 본떠 디자인했기 때문이다. 무슈 디올의 디자인은 대다수가 꽃과 자연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다. 그는 늘“꽃은 여자만큼이나 신성한 것”이라고 얘기하곤 했다. 전쟁에서 갓 벗어난 시점, 여자들이 군인처럼 우락부락하던 시절에 그와 정반대 느낌의 풍만한 가슴과 잘록한 허리, 꽃부리부터 퍼지는 모양에서 모티프를 얻은 뉴룩을 발표했으니, 그 시기에 얼마나 혁신적이었겠는가.

뉴룩에 대한 당시 사람들의 반응은 어땠나?
전후의 파리 사람들에게 고도의 기술과 장인정신으로 만든 쿠튀르 룩을 선보였으니, 반응은 엄청나게 뜨거웠다. 특히 여성들은 자신들의 여성성을 되찾을 수 있게 되었다며 열광했다고 한다. 뉴룩을 본 이들은 모두 ‘아름다움의 부활’이라는 표현을 서슴지 않았다.

처음 발표한 뉴룩은 로즈, 블랙, 블루, 브라운의 네 가지 컬러로 만들어졌다. 왜 이 네 가지 컬러를 선택했을까?
그는 컬러에 대한 감각이 뛰어난 사람이었다. 갤러리를 운영했던 경험과 그곳에서 디렉터 역할을 겸하면서 익힌 색에 대한 감각을 통해 이미 각각의 컬러가 어떤 느낌을 가지고 있는지 정확히 파악하고 있던 터였다. 네 가지 컬러는 선택한 이유가 모두 달랐는데, 로즈 컬러는 가장 여성스러운, 모든 여성을 위한 컬러라는 것이 이유였고, 블랙은 그가 가장 좋아하
는 컬러이자 여성스러움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컬러이기 때문이었다. 블루는 블랙과 경쟁할 수 있는 컬러라서, 브라운은 누구에게나 무난히 어울리는 컬러라서 선택됐다

지금까지 얘기를 들으니 뉴룩이 당시에 얼마나 혁명적인 옷이었는지 알 것 같다. 하지만 아무리 대단한 디자인이었다 해도, 지금까지도 신제품의 모티프가 될 수있다는 것이 신기하기만 하다.
디올에게 뉴룩은 단순히 ‘디올을 유명하게 만든 첫번째 옷’이란 의미를 넘어선다. 뉴룩은 엘레강스, 여성들의 행복, 여성성과 그녀들의 욕망 등 다양한 것을 표현하고 있다. 한마디로 디올에서 보여주고자 하는 모든 정신을 담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아직까지 디올 하우스의 영감의 원천이 될 수밖에 없다.

이번에 새롭게 출시된 마스카라에 왜 ‘뉴룩’이란 이름을 붙였는지 궁금하다.
이유는 두 가지다. 정말 단어 그대로 뉴룩, 새로운 룩이라는 뜻이다. 새로운 느낌, 새로운 모습을 연출할 수 있는 메이크업 제품이라는 의미. 또 하나는 그 효과 때문이다. 뉴룩 마스카라는 스커트 라인처럼 풍성한 볼륨감을 주고, 강력한 컬을 만들어준다. 브러시의 모양도 뉴룩의 라인과 비슷하고. 이번 뉴룩 마스카라야말로 패션이 코스메틱으로 멋지게 부활한 좋은 예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출처 marieclaire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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